
화가의 우연한 시선
최영미
돌베개
2002년 11월
사진출처: YES24
2007년 도서분류: 미술/사진 1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유화, 146X114cm
아흐메트 에르테귄 부부 컬렉션
뉴욕
1954
유화, 146X114cm
아흐메트 에르테귄 부부 컬렉션
뉴욕
이번에 구입한 책은 2002년에 나온 초판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나온 판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디자인도 세련되어져서 구미를 당기게 한다. 표지 뒤편에는 미술사 쪽으로는 확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홍준 현 문화재청장(책 발표 당시에는 명지대 교수였던)의 추천사가 실려있다. 서문을 보아 하니 잡지 '노블레스'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 낸 것이고 해당 잡지의 성격을 미루어볼 때 주요 독자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장과 장 사이에는 부족한 지면을 채우기 위함인듯 본문의 주요 내용이 강조처리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얇다.
책의 흐름은 고대 이집트 석상에서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단편적인 내용을 훓어내려가며 자신의 시선을 담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주제없이 미술사개론에 나오는 통시적 흐름을 그대로 좇다 보니 조금만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형식상의 따분함을 느낄 만하다.
왜 이렇게 짜증섞인 푸념을 하느냐고?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다는 뜻이리라.
나는 미술사 대중화에 한몫했던 이주헌이나 노성두, 자신의 주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절절한 미술 에세이를 내놓았던 서경식 사이에 최영미가 위치해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미술사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에는 시인이자 작가로 훨씬 더 인지도가 높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전문 미술사가와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림평이다.
최영미의 글들은 따스하게 다가온다. 대부분 미술사에서 잘 알려진 그림들에 대한 감상을 쓰고 있지만, 그 자신도 이야기하듯 들라클루아의 '제니의 초상'등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흥미롭고 특이하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글들을 100% 올곧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녀라면 좀 더 알차고 멋진 책을 만들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꼭 도판이 꽉꽉 들어차있는 책이 아니더라도 뭔가 전체 그림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내 능력이 부족해서 저자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책의 출판에 상업적인 고려가 적잖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위의 그림,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예전에 김영하의 동명소설 '빛의 제국'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름에서 왔다는 것도, 그리고 소설의 표지가 바로 그 그림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그리트의 그림은 한껏 재미있게 소설을 읽었었던 그 무렵의 추억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해 주었다.
한 주의 피로를 푸는 일요일 오후에,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그림과 어우러진 따스한 글들을 감상하기에 좋을만한 책이다. 단, 너무 깊은 내용을 기대하지는 말 것.
Posted by 배추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