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수 판화레터 08년 5월 8일자
고1 겨울, 나름 민감한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
태어나서 읽었던 소설 중 가장 길었던 '토지'를 읽었다.
겨울방학 꼬박 야자시간 틈틈히 보면서 결국 전권을 마무리했을 때의 기분은
큰 산을 정복한 뒤 산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기분이었고 그 느낌은 아직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 감격이 지나쳐서였는지, 사춘기 소년의 치기어린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난 남들보단 고상한 팬이니까 아이돌 애들보다는 고명한 소설가에게 팬레터를 보내야지'하는 마음이었는지 구분하기는 불분명하지만 나는 암튼 난생 처음 팬레터라는 것을 강원도 원주 박경리 선생님 집에 띄웠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토지를 통해 얻게 된 우리말 감각과 '이만한 책도 읽었는데..'하는 자신감 등은 이후 고교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토지를 읽은 지 10년, 박경리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나는 지난 과거를 다시 뒤돌아본다.
10년 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
나는 얼마나 많이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토지', '태백산맥' 등을 읽으며 꿈을 키웠던 소년은
점점 더 사회에 찌들어가며 그 변화에 대해 반성아닌 변명만을 내뱉으며
자신을 합리화해가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반성해야만 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Posted by 배추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