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
2006년 03월
사진출처: YES24
2007년 도서분류: 국내외 문학 (1/10)



기어코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 이제 한동안은 광주가 삶의 보금자리가 되겠지만 아직은 서울이 더욱 익숙하다. 그렇게 정 주기 싫었던 서울도 한 7년 살다 보니 하나하나 덧입혀진 추억들 때문에 미운정이 들었던건가. 시간이란 녀석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연수갔다 들어와서 1년만에 보는 후배와 교보문고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오랫만에 좀 여유있게 서가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기차를 타고 용산에 와서, 교보문고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한 시간 전인 11시.

밖이 추워서 그랬는지 서점은 평소보다 더 시장통처럼 북적였다. 그래도 새로 나온 신간 서적들과 잡지들을 들춰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우리 회사에서 테스트삼아 교보에 내 놓은 RFID 서비스도 짐짓 모른 척 체험해 보고,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구매할 DVD 목록도 생각해보고 하며 주어진 한 시간을 거의 다 보낼 즈음, 책 진열대에서 이 소설을 발견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피식 웃었다. 그리고 책을 집어 셈을 치르고 후배를 만났다.


...

햇살이 뜨겁던 지난 여름, 우연히 집어든 소설의 앞 부분은 참 재미났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픈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책이었고,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언제나 아쉬웠던 터였다. 그로부터 꽤나 시간이 흘렀고, 서점에서 책을 사 갖고 나온 것은 이젠 끝까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소설에도 스포일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세 명. 일부일처제라는 사회적 관습에서 자유로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뿐이다. 자기 이외에 다른 남자와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고, 나아가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아내 인아를 덕훈은 버거워하고 자신에게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녀를 너무 사랑하기에 아내를 정점으로 다른 남자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게 된다.

'아내가..'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일부일처제라는 강력한 관습에 대해서 딴지를 건다. '한 사람만을 검은 머리가 파뿌리되도록 영원히 평생 사랑하겠다는' 낭만적 사랑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 '굿바이 솔로'의 노희경 작가와도 코드가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어찌보면 도발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와 같은 주제를 박현욱은 축구를 빌어 매우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진 최대의 강점일 것이다. 찰떡같이 묵직하지만, 꿀을 발라놓은 듯 술렁술렁 잘도 넘어간다.

사람은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종족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요소까지 결부된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한 특성이 더욱 잘 반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다수의 남자들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꽤나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사랑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합법적인 결혼도 요구한다면? 그것도 혼인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면서? 박현욱의 말대로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러한 사건들이 '프로그래밍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들은 꽤나 도발적으로 다가올 것임에 틀림없다. 굳이 결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시에 여러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보라)

하지만 비틀거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남자들은 자신들이 '착탈식 안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바람을 피워도 되지만, 아내가 그런다면 이혼한다는 사고는 분명히 자기중심적이며, 합리적이지 못하다. 주인공 덕훈의 할아버지는 처첩을 두었고, 아버지는 소문난 난봉꾼에 오입쟁이였던 것처럼 한국 사회는 분명 남성 위주의 일부일처제 사회였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습득한 사고체계는 이러한 비합리성을 '관습'이라는 이름의 합리성으로 둔갑시킨다.

덕훈이 사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도발적으로만 여겨지는 폴리가미, 다처다부제가 일상화되는 날이 더욱 빨리 다가올 수도 있다. 그동안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종속되어 있던 여성들의 힘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TV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어왔던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춘향전 류의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 언제까지나 대중들에게 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많이 어색하겠지만, 다양한 종류의 가족들 혹은 사회적 단위가 허용되는 사회가 획일적인 일부일처제 시스템으로 구성된 사회보다는 건강하고 포용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 속에서 새로운 가족형태를 창조한 덕훈과 인아, 그리고 또다른 남편 재경과 이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 지원이 뉴질랜드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덧글-

소설의 최대 약점은 인아라는 캐릭터와는 달리 덕훈과 재경이라는 남자 캐릭터들 모두가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한 여자에 목매는 '낭만적 사랑'을 구현하고 있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덕훈과 재경은 인아에 대한 '낭만적 사랑'으로 인해 그녀가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가족형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커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아의 다양한 매력 즉 성적 매력과 초인적인 업무 및 가정관리능력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실성이 어느정도 결여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현욱의 낭만적 사랑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빛바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Posted by 배추돌이

2007/03/11 21:34 2007/03/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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