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오래된 미래
2005년 03월
사진출처: YES24
2007년 도서분류: 국내외 문학 (2/10)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누구보다 자 외웠고 또 그것으로 잘난 체를 했지만, 그것은 시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암기력 테스트에 불과했다. 교사들이 분석해 주는 시를 들으면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시를 곤충처럼 날개를 찢고, 더듬이를 잘게 부수고, 등껍질을 다 벗겨내 마침내 죽게 만드는 행위임을 느꼈다. 훗날 내 손으로 직접 시집을 사들고 와서 혼자만의 방에서 조용히 소리 내어 시를 읽었을 때, 비로소 시는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 류시화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본문 146p.
시집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음깊이 음미하며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난 항상 산문이 좋았다. 문학의 정수가 시에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시를 처음 접하게 되는 중고교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다. '시는 어렵고, 이해할 수 없다'라는 고정관념이 너무도 강해서였는지, 대학에 와서도 시집을 사 봤던 것은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을 때, 난 내가 달라져있음을 느꼈다. 시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시를 종이에 박혀 있는 활자가 아니라 하나의 노래로, 속삭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항상 따분하게만 느껴지고, 수박 겉핧기 식으로 책장을 넘기곤 하던 내가 시어 한줄 한줄에 내 몸을 맡겨두고 있었다.
스물 여섯 해를 보내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로구나. 수많은 시인들이 시를 자신의 인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던 이유...
그 사이에 무엇이 변화했던 것일까. 세상과 접하면서, 좀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되면서 짧게 응축되어 있는 시 속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더 많이 끄집어낼 수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중고교때 의식적으로 길들여졌던 시를 해체하는 작업에서 이제야 자유로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나는 배웠다'를 인터넷에서 먼저 보고 시집을 샀던 것, 그리고 짧게 끊어 써내려가는 웹에서의 글쓰기 형식과 시의 형식이 유사한 것을 생각해보면 인터넷 공간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잊고 있던 언어를 다시 찾은 기분이어서,
늦게나마 다행스럽다.
Posted by 배추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