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효율·성과만 따지기보다 '영혼이 있는 승부' 도전하라"


<중략>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 '도전정신'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경쟁의식이나 효율성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친구들이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안정'이란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고 한다. (목소리 톤을 서서히 높이며) 정말 자기가 재미 있고, 의미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효율 측면에서만 따진다면 나는 비효율적인 인생을 살았다. 의사나 CEO로 보낸 시간들이 (현재의 나에겐) 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안 교수가 정의하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 내가 지금 성공을 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공의 정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니 달라야 한다. 사람마다 가진 능력이 천차만별인데, 어떤 기준으로 성공을 규정할 수 있겠나. 내 경우에 비춰 (성공을 얘기해) 본다면,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고 내가 한 일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의 정의를 말하라고 한다면,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교수를 택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제시해 주면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효율이나 성과만을 따져 성공을 판단하는 시각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영혼이 있는 승부'를 권하고 싶다.

-국내 벤처기업들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한적이 있다. 이유가 뭔가

: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부터 먼저 뜯어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겐 좀처럼 재기의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성공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다. 개인의 역량으로 실패하는 경우는 30~40% 밖에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부 영향에 의해 결과가 나쁘게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실패한 사람이 곧 무능한 사람은 아니다.

실패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실리콘밸리에서도 100개 기업 중에 99개는 실패한다. 하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기회를 계속 주는 게 바로 실리콘밸리의 힘이다. 특히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만 따서 기업들에게 반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반드시 실패한 기업들의 단면을 뒤돌아봐야 한다.

또 전문가들이 결정권을 갖고,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다 아는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몇 십 년간 연구한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말로만 독도를 외쳤지 전문가들을 키우지 못했다. 그러니 국제 무대에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웃음) 내가 성공했다는 말은 좀 그렇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을 굳이 말하라면 매 순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장기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다면 아버지처럼 평생 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체질상으로 그게 안됐다. 사회 생활을 첫 번째 한 게 의대 교수였는데, 결국 돌아와서 또 카이스트에서 대학 교수를 하고 있다.

그냥 매사에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또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난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안정적이고 편한 기득권 같은 것들은 나를 잡지 못한다. 나 자신도 내가 뭘 할지 잘 모르겠다. (안 교수는 현재 새로운 서적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힘든 시절이 있었다면?

: 당연하다. 나라고 왜 어려웠던 적이 없었겠나. 처음 안철수연구소를 세우고 4년간은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언제 망할지도 몰랐다. 지금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잘 된 것처럼 보이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매달 말이 가까워오면 도저히 직원들 월급을 줄 자신이 없었다. 현금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어음깡이라는 것을 해서 현금을 만들어서 준 적도 많다. 매일 부도를 걱정하면서 4년을 살았다.

직업을 바꿀 때도 어려웠다.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 다섯 살에 MBA를 찾아 떠나 갈 때도 그랬다. 그 나이에 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학생 신분으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나태해질 수도 있는 나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선 그렇게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중략>

-젊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 안전지대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미국에서 같이 MBA를 공부했던 많은 똑똑한 친구들이 지난해에 월스트리트로 갔다. 그 친구들 지금은 금융위기 때문에 절반 이상이 다 잘려 나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결코 안전한 곳은 아니다. 그 쪽이 편하고 전망도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전망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안정적인 전망은 예측 또한 불가능하다. 수험생들도 보면 각 대학에서 커트라인이 높은 곳만 선호하는 데, 진짜 어리석은 일이다. 재미와 의미 있는 보람을 찾을 수 있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래의 진로를 정해야 한다. 그것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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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직장생활 만 3년째.
그동안 '영혼이 있는 승부'를 해봤던 적은 과연 몇 번이던가?
매일매일 '정말 열심히 살았노라'고 자평할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지금 이 순간에 치열하게, 충실해야 한다.
인생 매 순간이 승부의 연속이다.

2010년, 그야말로 '영혼이 있는 승부'를 하게 될 또다른 한 해를 그리며...

Posted by 배추돌이

2009/12/14 10:52 2009/12/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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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 스스로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잘 놀고 잘 지내다가 죽음이나 기다리자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그때 나무라도 심었으면 그 나무가 얼마나 자랐겠습니까?
 
나는 지금 아흔다섯 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의 생일날! 아흔다섯 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55p)
 
박승복 지음 '장수 경영의 지혜 - 88세 샘표 박승복 회장의 인생의 성공, 사업의 성공 이야기' 중에서 (청림출판)
무언가를 시작하려다 멈칫하는 때가 있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짰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무 늦어서, 자신이 없어서, 자금이 부족해서...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를 떠올리며 그만둡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포기하는 겁니다.
 
하지만 95세에 어학공부를 시작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늦어서...'라는 생각은 정말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88세인 샘표 박승복 회장이 한 원로 모임에서 들은 어떤 노인의 일기 내용입니다.
95세인 분이 몇년 전에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해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합니다. 그리곤 어학공부를 시작합니다. 10년 후인 105세 생일날, 95세 때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예전에 90대의 일본 노의사가 중국어를 새로 배우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새로 배운 중국어로 중국 현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강연도 했습니다. 멋진 모습입니다.
 
30대, 40대, 50대, 60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정말 없습니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9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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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은 한낮 경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현실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3개월 남은 2009년 내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은,

담당대리점의 판매력 성장,
방송대 석사논문준비,
중국어 중급수준으로 Upgrade,

중간에 포기하거나 게을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Posted by 배추돌이

2009/10/07 08:55 2009/10/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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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단체들, 촛불정국 때 조직키우기 고민
 지배하려는 오만 버리고 약자와 연대해야"
 

[현장] 신영복 교수 신년 특강... 진보에게 '성찰'이 필요한 이유
이승훈 (youngleft) 기자

2009년 여전히 거리에서는 해직 교사들이 생이별한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해직 기자들은 찬바람 속에 '낙하산 반대'를 외치고 있다. 또 정부의 대운하 음모를 폭로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징계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린다며 한 손으로는 비정규직 확대와 최저임금 삭감안을 만지작거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1% 강부자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대규모 감세 선물을 안겨줬다. 마스크를 쓰고는 시위를 할 수 없고 국가 권력이 개인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 내역을 맘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황당 시추에이션'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여론의 독과점을 불러올 특정 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출도 머지않아 보이는 긴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뭐냐고 묻는다면? '싸움'이라는 답이 나오기 쉽다. 때문에 요 며칠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민생을 파탄 낼 정부의 '삽질'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같은 물음에 다른 답을 내놨다. 지난 8일 저녁 7시 희망제작소에서 마련한 신년 특별 강연에서 그는 '싸움의 시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나 '성찰'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마당 한가운데 앉아 자신을 부단히 바꾸기 위한 '성찰'을 하라니, 현실에 바로 적용할 날 선 비판과 현실적 대안을 기대했다면 한숨이 터져 나올 수도 있겠다.

'싸움의 시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
   
신영복 교수는 정말 현실엔 무관심한 '성찰의 전도사'인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진보의 실패 원인과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았지만 행간의 함의는 그렇게 읽혔다. 민주화 세력이 2번 집권했지만 대중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며 독재정권의 향수에 빠지는 등 역풍이 부는 상황에서 기존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현실에 맞는 해법을 찾는 것을 각자의 몫으로 남겼다. 무엇보다 사회를 개혁하는 일, 그리고 그 전제가 되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는 것은 대단히 긴 여정입니다. 예전에 정치권력을 획득하면 단기간에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모두 실패하지 않았나요.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력했던 정치권력이 나치와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는데 모두 사회를 바꾸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의 개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사회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조정하면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신 교수는 조급증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그는 긴 여정을 나서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념'이 아니라 '양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1960년대 학생 운동을 할 때 친구들과 함께 '좋은 실천가'의 덕목을 정해 봤습니다. 진보적 사상을 가질 것, 사명감을 가질 것, 조직력과 설득력이 있을 것 등이 꼽혔는데 이런 능력을 갖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이 친구들이 뭘 하고 있을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출소 후 수소문해 봤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다들 다른 분야에 가서 돈도 벌고 출세를 했더군요. 그 자리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예전에는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들, 이념적 결단이 아니라 고생하는 친구들 보기 미안해서, 돕지 않으면 양심에 거슬려서 함께 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런 양심을 내면에 품기 위한 방법으로 신 교수가 제시한 것이 바로 '성찰'이다. 이를 통해 진보운동의 패러다임을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갈 수 있는 끈기 있는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기나 긴 변혁의 길, 이념 아니라 양심 있어야

신 교수는 특히 성찰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감옥에서 보낸 20년의 세월 동안 탈근대의 과정을 다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동료 수감자들을 대상화, 타자화해서 관찰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나서는 '아, 나도 그런 부모를 만났으면 저렇게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존과 이해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공장에서 나이 많은 목수가 집을 그리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 목수는 나와는 반대로 주춧돌부터, 그러니까 집을 짓는 순서대로 그리더군요. 집을 책에서만 본 나 같은 사람은 지붕부터 그리는데 직접 노동을 통해 집을 지어본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본 후 나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통렬한 자기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차이를 경험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이죠."

신 교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반가운 기회로 맞이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들뢰즈를 인용하고 똘레랑스(관용)의 한계도 명확히 지적했다.

"똘레랑스에는 강자의 자기동일성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소수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강자의 논리에 흡수될 것이라는 오만이 스며 있는 것입니다. 차이를 만나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단히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들뢰즈는 '소수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자기 것을 영토화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자기 것을 버릴 수 있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반성과 변화가 없으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판을 잘 하지 않는 신영복 교수지만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에도 날을 세웠다.

"운동단체들도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지 않고 흡수와 지배를 통해 자기 동일성을 관철하려고만 합니다. 촛불 집회 때도 그랬죠.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자신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하고 있는데 운동단체들은 촛불의 성과를 단체의 조직을 키우는 데 퍼담을 수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는 운동단체들을 만나면 하방연대(下方連帶)하라고 강조합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남성은 여성과, 노동자는 농민과, 즉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연대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강자와는 연대가 아니라 추종이고 복속일 뿐이죠."  

"누구는 이끌고 누구는 따라가는 방식은 옛날 방식"

신 교수는 소수의 차이를 변화의 기회로 삼기보다 차이를 흡수하고 지배하려는 세불리기는 낡은 '웹1.0 시대'의 방식이라며 새로운 행동론으로 '여럿이 함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누구는 기획하고 이끌고 누구는 뒤에 따라가는 방식은 옛날 방식입니다. 함께 가면 길은 나중에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게 웹 2.0시대에 맞는 사고입니다. 누가 지시해서가 아니라 같이 고민하면서 가는 것이죠.

그리고 먼 길 가는 사람은 목표의 정당성이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것이죠. '길'은 무작정 속도를 내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도로'가 아닙니다.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고 자기의 흔적도 남겨야 하고 코스모스도 봐야죠."
 
 
2009.01.09 15:28 ⓒ 2009 OhmyNews
 
 

Posted by 배추돌이

2009/01/09 18:11 2009/01/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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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성장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유기체이다. 성장이 정체된 회사는 결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으며 결국 도태되고 만다. 각 기업들이 매출증대와 신규사업발굴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개별 기업차원에서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현실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업들이 성장할 수는 없다. 결국 시장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든 아니든 약육강식이 펼쳐질 수 밖에 없고, 적절한 세력균형을 이루는 몇몇 기업들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균형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기존의 체제를 뒤엎는 기업들이 나올 때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다 보면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가치창출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끝없는 발전과 성장에 대한 신화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자양분을 제공했지만, 최근 등장하는 환경문제나 금융위기 등은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에 좀 더 무게를 실리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와 같은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언제까지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수 있을만큼 인간의 창의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혹은 지구 밖에 있는 우주에서 성장의 바탕이 되는 또다른 자원을 찾아서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두 가지 모두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간의 지능에는 한계가 있으며, 물질적인 자원 역시 한정적이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서는 일단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고, 무엇을 위해 성장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것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인류가 지나온 길, 그중에서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자는 입장이며, 그 원점의 시작은 결국 인간이다.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이 인간과 우주, 삶의 목적에 관한 문제로 회귀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것이 인문학이 최근 각광받는 원인일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만약 인문학에 대한 최근의 관심이 '보다 높은 성장'을 위한 '창의성 발견'의 차원에서라면 그러한 인문학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참된 가치는?

그걸 모르니,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이런저런 경험도 해보는 것 아니겠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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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통해 정신세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 시사인
신영복 서신 인터뷰-경제와 인문의 통섭/신영복(67)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기징역 선고받고 20년 수감. 1988년 특별가석방 출소. 1989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특채 임용. 2006년 8월 정년 퇴임. 현재 성공회대에서 ‘신영복 함께 읽기’ 강좌 진행·인문학습원 원장을 맡아 ‘CEO 인문학 과정’ 개설.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58호] 2008년 10월 21일 (화) 14:03:21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시사IN 윤무영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경제학자이자 인문학자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지만 20년 수감 생활을 거친 뒤로 그의 관심은 인간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경제·정치·문화를 망라해 그가 종착한 곳은 인문학이었다. 진단과 전망이 불투명한 세계경제의 격변기에서 ‘신영복의 통찰’을 빌려 현 단계 자본주의가 처한 주소지를 가늠해봤다. 신 교수와의 인터뷰는 10월13일과 16일, 두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이뤄졌다. 

경제학에서 인문학으로 이동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경제학은 사회의 토대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뛰어난 관점을 제공해줍니다. 또한 물질적 조건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분야를 포섭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막강한 자본권력은 그러한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 그 자체를 재구성하고 소외시키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지요. 현대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아마 ‘인간적인 사회’와 ‘사회적인 인간’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그 자체가 곧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 당대 사회의 과제와 함께 그 강조점이 이동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스스로 돌이켜 보더라도 최근의 인문학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바탕에는 경제학적 인식 프레임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드러난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미국발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근본 관점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금융위기를 글자 그대로 화폐금융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은 근본 접근이 아닙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미 산업자본으로부터 금융자본으로 그 헤게모니가 이행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세계경제 질서가 바로 금융자본의 운동 양식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세계 외환거래에서 실물거래가 5% 미만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요컨대 최근의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의 축적 양식이 필연적으로 경과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통해 금융자본의 독점화가 진행되는 것은, 공황을 통해 산업자본의 독점화가 진행되어온 것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공적자금의 투입, 그리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금융회사의 파산, 그리고 많은 투자자의 손실이 대규모 금융자본으로 귀속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치유와 전망은 대단히 불투명합니다.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금융위기는 과거 공황의 주기적 도래와 마찬가지로 상당기간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조정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금융자본 축적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금융공황이 결국은 자본의 ‘독점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하셨는데요.
단기로는 자본주의 국가 간의 공조와 또 그들이 행사하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조정 국면이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 관점에서 자본운동은 자본, 그 자체를 파괴하는 모순 운동이라는 점에서 시스템이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이행 과정이 어떠한 경로를 밟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개 과정은 한마디로 자본 축적 과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최근의 금융위기를 보는 기본 시각도 자본 축적-불균형의 누적-공황-독점화-대외 팽창이라는 도식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산업자본의 자본 축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쌓이는 생산 부문 간의 불균형과,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등을 조정하는 방식이 공황인데 이 공황의 탈출구가 바로 소비가 극대화하는 전쟁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물론 신기술·신상품의 등장과 함께 인간의 욕망 자체를 양산함으로써 그 간극을 줄여보기도 하고,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수용한 부분을 부단히 외화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해왔지만 결국 자연과 인간의 황폐화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공간이 이미 자본의 활동 공간으로 편입되어 아직도 시장화하지 않은 지구적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자본 측은 유의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출구는 결국 단기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산업자본이 자연과 노동력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얻는 것이라면 금융자본은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융자본의 축적 양식은 최고·최후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구 정상들이 모여 내놓은 ‘달러 무한대 지급’ 같은 구제 조처는 결국 ‘금융자본 독점화’의 한 경로인 셈인가요?
그렇습니다. 자본과 권력은 역사의 어떠한 시점에서도 서로 견제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계체제론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월러스타인의 비판처럼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200년이 되는 1989년에 자본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사IN 윤무영
지난 10월7일 중앙대에서 열린 ‘인문주간’ 행사에 신영복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경제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경제정책에서 신뢰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책이나 사람에 대한 신뢰는 차라리 부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환정책이라는 단기 정책에서는 상당 기간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중장기 구조개혁 프로그램이 뒷받침되는 좀더 근본적인 경제정책이 제시되어야 하고, 신뢰는 그러한 장기 전망에 대한 것으로부터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해외부문 비중이 75% 이상이기 때문에 외환부문의 위기가 곧 국민경제 전반의 위기로 직결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내수 기반의 중견·강소 기업군을 튼튼히 하고 해외 부문을 유럽 선진국처럼 40∼50%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구상되어야 합니다. 축구에서 미드필드를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전방 공격수마저도 미드필드의 안정성이 없이는 효과적인 공격이 불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수비 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용, 복지, 나아가 양극화 문제 역시 이러한 내수 기반의 중견·강소 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경제 리더십은 이러한 구조개혁에 대한 신뢰를 중심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구조적인 위기 상황에서 언제나 고통받는 이들은 약자, 서민이었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조어도 물론 있습니다만, 역사란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는 최근의 나라 안팎 정치·경제 상황이 신자유주의,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근본 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교실이기를 바랍니다. 인문학 담론이 폭 넓게 공유되는 그러한 계기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곳곳에 넓게 남아 있는 비시장 공간에 주목하고 그곳에 ‘숲’을 만드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의 전환을 고민했던 그람시의 사유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최근 ‘CEO 인문학’이 일종의 유행처럼 부각되고 있습니다. 시장권력과 인문정신의 만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문정신, 인문학 관점이 최근 부각되는 까닭은 가깝게는 경제 불황과 경제 중심의 사고를 반성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인문학이 창조경영에 유익하다든가, 인문정신이 새로운 경영혁신을 위한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관점은 매우 반인문학적 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문정신은 이를테면 ‘경제 살리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경제를 살리는 목적은 결국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경제가 사람을 살리는 물질적 토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과정이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이라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자본과 인간의 만남, 시장과 인문정신의 만남이 이러한 전도된 인식 프레임을 반성할 수 있다면 늦었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인문학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와 공부가 될까요. 
논어의 수사(修辭)에 의하면 지(知)란 지인(知人), 즉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나 그러한 사람은 ‘무지한 사회’ 또는 ‘무지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기쁨과 아픔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하는 철학적 성찰이 대단히 필요한 환경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힘겨워하는 오늘의 실존에 대해 냉정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단어는 ‘사람’의 준말입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기쁨과 아픔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유와 소비에 갇혀 있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배추돌이

2008/11/26 18:46 2008/11/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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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수록 사랑은 커지는 법,
그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은 더욱 아름답다.

멋진 사랑을 키워가는 션과 정혜영 부부.
그들을 본받고 싶다.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11256&pt=nv


  레이디경향 2008년 7월호
나눔 바이러스 퍼뜨리는 선행 천사 션·정혜영 부부

션·정혜영 부부에게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결혼기념일마다 1년 동안 매일
만원씩 모은 3백65만원을 무료급식소에 기부하고, 딸의
돌잔치 대신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성금을 내며,
갓 태어난 아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입양기관에 기부를 한다.
나눌수록 커진다는 이 부부의 행복 이야기.


우리 점점 닮아 가는 것 같아요

부부는 점점 닮아 간다더니 우리도 서로 닮아가는 것 같아요.
전 그런 점이 너무 재밌고 좋아요.
남편의 크나큰 사랑,
삶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랑을
저도 닮아가길 기도합니다.
여보, 사랑해!
그리고 늘 고마워…….

-혜영


작지만 큰 행복, 나눔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션(36)·정혜영(35) 부부. 부부의 봉사활동은 결혼 1주년이 되던 날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결혼 1주년을 맞아, 결혼한 날부터 하루에 만원씩 모은 3백65만원을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펼치는 ‘밥퍼 나눔운동본부’에 전달했다. 결혼기념일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고, 부부가 함께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우리 부부는 매일 만원을 모았어요. 만원을 가지고 매일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도 있고 무엇을 살 수도 있어요. 만원을 쓰면서 우리는 잠깐 동안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하루에 만원씩 1년 동안 모으고 나눈 결과 우리는 정말 큰 행복을 가질 수 있었어요.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나눔에 있는 것 같아요.”

첫딸 하음이가 태어난 후에도 하루에 만원씩 모았다. 하음이가 태어난 지 1년 되던 날, 그 돈을 서울대학병원에 어린이 난치병 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병원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고 케이크를 자르는 것으로 하음이의 돌잔치를 치른 것이다.

결혼 2주년, 3주년 기념일에도 어김없이 3백65만원을 ‘밥퍼 나눔운동본부’에 전달했다. 극빈자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무료 병원인 ‘다일 천사병원’에 1004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로써 정혜영은 평생 천사 회원증을 받았다. 정혜영은 “남편이 내 이름으로 다일 천사병원에 1004만원을 기부해서 평생 천사 회원이 됐어요. 살면서 이런 선물을 받을 줄이야. 남편에게 너무나 특별한 선물을 받았어요”라고 전했다.

부부는 현재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신접살림을 차렸던 아파트의 전세 계약이 만료돼 이사한 집이다. 이들 부부에겐 내집 마련을 위한 재테크가 없다. 여느 부부들이 두세 개쯤은 갖고 있다는 적금, 보험도 없다. 의료보험, 자동차보험, 국민연금이 전부다.

“적금하고 보험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 부부 것도 없고, 아이들 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정혜영. ‘정말 저 정도까지 나눌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다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션은 “알아서 잘 크겠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정말 대단한 부부다.

션·정혜영 부부는 필리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6명의 아이들과 부모·자식의 인연을 맺고 일대일 후원을 해왔다. 그러던 중 정혜영이 필리핀의 딸 클라리제 양을 만나고 온 뒤 후원 대상자를 94명이나 늘렸다. 이로써 부부는 외국에 모두 100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션은 그 100명의 아이들은 ‘아내의 선물’이라며 고마워했다.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잖아요. 내 아이를 낳아보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게 무언지 알겠더라고요. 아내가 그 많은 아이를 낳지는 못할 테니까 제게 100명의 아이를 선물한 것 같아요(웃음).”
매달 10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데 드는 돈만 해도 적지 않다.

“수입의 일정한 액수를 떼어 기부를 하면 떼어낸 만큼 부족해야 되는데 오히려 더 넉넉해진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게도, 100원으로 살다가 80원으로 살아도 풍족함을 느끼거든요. 우리 부부에겐 10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것이 집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행복한 가정 만들기
얼마 전, 부부가 펴낸 책 「오늘 더 사랑해」(홍성사)는 자신들의 미니 홈피에 올렸던 내용을 토대로 엮은 에세이집이다. 책은 부부의 아내 사랑, 남편 사랑, 아이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가수가 돼서 처음으로 CD를 발매하고 데뷔 무대에 섰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고 기뻤는지 몰라요. 에세이집을 낸 지금,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제가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 지극히 가정적인 이야기들이어서 망설였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남편이 말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정혜영. 아내에게도 이 책은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사실, 굉장히 쑥스러워요. 남편이 쓴 글이 훨씬 더 많아요. 남편이 제게 썼던 편지와 카드, 아이들에게 썼던 편지 등을 엮어서 책으로 냈거든요. 책 제목 ‘오늘 더 사랑해’도 남편이 제게 썼던 카드 글귀 중 하나예요. 우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아내 사랑이 끔찍한 션은 이 시대의 부부들에게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요즘 이혼율이 무척 높잖아요. 함께 살면서도 서로 정말 사랑하면서 사는 부부는 많지 않다고 해요. ‘10년 넘게 산 부부는 우정으로 산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부부가 왜 우정으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은 그 누구도 모르잖아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든, 결혼해서 몇 년을 같이 살았든, 아주 오래 산 부부든 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부부는 에세이집을 출간한 기념으로 책의 수익금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홀트아동복지회에 천만원을 기부했다. 이 책의 수익금은 모두 나눔에 쓸 생각이다.

“제 미니 홈피를 통해서 ‘행복한 가정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사연을 보낸 사람들 중에서 뽑아 채플 웨딩을 치러주는 거예요. 이번에 낸 책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익금도 당연히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사용할 거고요.”

션·정혜영 부부의 이런 공개적인 선행은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부부의 나눔 바이러스에 중독되듯 나눔에 동참하길 바라는 것일 뿐이다.

아내는 공주, 남편은 왕자
션은 감동적인 이벤트를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그는 정혜영과 만난 지 백 일, 천 일, 2천 일 되는 날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겼다. 션과 정혜영이 교제를 시작한 지 백 일 되던 날, 션은 드라마 촬영 중이던 정혜영을 방송국 지하주차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장미꽃 백 송이와 코디네이터를 위해 준비한 샌드위치까지 건넸다. 정혜영이 깊은 감동을 받았음은 당연하다.

정혜영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벤트는 7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벌어졌다. 감기를 앓던 정혜영은 “먹고 싶은 거 없느냐”는 션의 말에 “녹차 아이스크림”이라고 답했다. 여의도에 살던 션은 당시에 흔하지 않았던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압구정동을 뒤졌고, 다행히 두 개를 샀다. 그 뒤 지하철을 갈아타고 10분을 걸어 정혜영의 집에 도착했다. 션은 정혜영이 하나를 먹는 동안, 남은 아이스크림이 녹을까봐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눈 속에 파묻었다가 헤어질 무렵 꺼내어 정혜영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렇게 다정한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정혜영에게 션은 ‘감동을 주는 남자’다. 그것도 아주 로맨틱하게 말이다. 수많은 이벤트로 아내에게 늘 감동을 선사하는 이 남자. “참 대단하다”고 하자 별것 아니라는 반응이다.

“사람은 누구나 귀하게 대접받고 싶잖아요. 내가 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면 돼요. 저는 아내를 공주처럼 생각하고 공주처럼 대하며 살아요. 그렇게 하면 공주의 남편인 저는 왕자가 되거든요(웃음).”
결혼 4년 차인 부부는 연애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단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정혜영은 “정말이에요”라며 말을 잇는다.

“저희는 정말 싸워본 적이 없어요. 연애할 때부터 남편의 찡그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남편은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 속에서 ‘감사’를 찾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제가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요(웃음). 아이들 보는 거 많이 힘들잖아요. 엄마인 저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는데,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무척 잘해요. 우리 부부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건 크든 작든 매사에 감사하며 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남편은 제가 ‘감사’하며 살게끔 저를 변화시킨 사람이에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없이 사랑스러운 션·정혜영 부부.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상대방의 말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많이 닮았다. 오는 8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로 복귀한다는 정혜영과 좋은 음악으로 인사드릴 것이라는 션. 연예인으로서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그 순간에도 부부의 선행은 계속될 것이다.
결혼 3주년, 하루에 만원과 기도

올해도 결혼기념일에 밥퍼를 찾았다.
혜영이가 하랑이를 출산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나 혼자 찾은 밥퍼.
작년에 혜영이가 앉아서 마늘을 까던 자리에 내가 앉아 마늘을 까고,
작년에는 하음이를 안고 있어야 해서 어르신들 식사 마친 식판을
설거지통에 넣는 일을 했지만 올해는 밥을 풀 수 있었다.
혼자 했기에 아쉬웠지만 아내의 행복까지
마음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기념일 그리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를 기쁜 마음으로 밥퍼에 보내준 나의 아내.
나는 밥퍼에 가서 아내의 마음까지 드렸다.
그리고 올해도 작은 것을 드렸지만 더 큰 행복을 가지고 돌아왔다.
결혼한 날부터 하루에 만원 그리고 밥퍼를 위한 기도 한 번.
우리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에도
365만원과 365번의 기도를 밥퍼에 드렸다.
우리의 하루 식사를 준비하는 작은 정성과 함께.

-션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제공 / 홍성사

Posted by 배추돌이

2008/07/16 13:44 2008/07/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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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클립 11기를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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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문

1. Youth CLIP은?!

Youth CLIP은 Youth Center for Leadership, Integration, Professionalism을 뜻하며, "우리가 함께 만드는 열린 사회"를 지향합니다. ‘행동하는 젊음(Youth in action)’들의 연대를 통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실현시키자는 것이 Youth CLIP의 비전입니다. 모든 활동은 순수학생으로 구성된 자원 활동가들의 기획 및 운영으로 이루어집니다.

ㅇ 클립의 방향
ㄱ. 우리는 국제 사회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세계시민으로 성장한다.
ㄴ. 프로젝트 수행을 통하여 국제적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1) 프로젝트 형식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2) 구체적 이슈 중 특히 소외계층에 주목한다.
(소외계층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정보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

ㅇ 클립의 활동
‘06.03.25~26 2006 국제교류박람회 '세계와 일촌맺기’
‘06.05.04~05 제4회 철원 어린이날 캠프
‘06.07.15~08.04 '대한민국 청소년 세계를 가다' 참여 - 캄보디아 현지에서 우물파기
작업 (주관: 국가청소년위원회,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06.10.01,03 '캄보디아에 우물이 필요합니다' 바자회 개최
(지구촌공생회에 1,289,000원 모금액 전달)
‘06.12.27~’07.01.02 일본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교 학생들과 국제문화교류
‘07.05.14~‘07.05.16 <캄보디아 생명의 우물> 기금마련 행사 (주관 : 서울대학교 IFF)
‘07.05.04~05.05 제5회 철원 어린이날 캠프
‘07.05.25~‘07.05.27 대학로 WAGY(We Are Global Youth) festival
‘07.06.20 ‘세계 난민의 날’ 행사
(공동주관 : Kocun,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07.10.17 ‘세계빈곤퇴치의 날’ 행사
(학생연합네트워크 USAN 프로젝트)
‘07.11.07 ‘UGC는 사랑을 싣고’공모전 수상
(주최 :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08.01.31~02.01 2008 다문화사회를 위한 세계문화체험전 ‘Over the Rainbow’

2. 선발 일정
ㅇ 모집기간: 2월 25일(월)~ 3월 14일(금) 23:59까지
ㅇ 서류합격자 발표: 3월 19일 (수)
ㅇ 면접일자: 3월 23일 (일)
ㅇ 최종합격자 발표: 3월 26일 (수)

3. 지원 자격
ㅇ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신체 건강한 젊은이
ㅇ 젊음, 열정, 참여를 사랑하는 글로벌 마인드의 소유자
ㅇ 수습 기간 6개월과 그 후의 정식 활동 6개월을 준수할 수 있는 사람
ㅇ 특기 보유자 (PRG : Public Relations Group) 우대
- 영상 : 영상 촬영 및 편집 기술 보유자
- 사진촬영 : 사진 촬영을 즐기며, 사진 촬영 기술을 갖춘 사람
- 웹 미디어 : 웹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사람

4. 클립 구성원의 의무
ㅇ 매주 일요일에 3시에 있는 전체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
ㅇ 선발 직후 3월 30일의 OT와 4월 5일~6일에 있을 MT에 필참
ㅇ Youth CLIP 외에 다른 활동을 병행할 시, Youth CLIP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어야 함

5. 접수 방법
지원서 다운받은 뒤 e-mail 접수 (youthclip@gmail.com)
* 제목은 "08YouthCLIP_지원서_홍길동"으로 통일합니다!

6. 문의사항
youthclip@gmail.com ([문의사항] 말머리 달아주세요!)
ㅇ 유스클립 10기 코디네이터 이유정 010-8954-1088

7. 클립 관련 사이트
www.youthclip.org
youthclip.cyworld.com (유스클립 활동사진)

Posted by 배추돌이

2008/02/25 08:59 2008/02/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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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을 뵙다





98년,

까까머리 고2였던 시절 친구네 집에 갔다가 무심코 찾아읽은 책이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대학입시에 요즘말로 '쩔은' 그 시점에서, '감옥..'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옹졸함과 속좁음을 준엄히 꾸짖는 따가운 회초리였다. 그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등 신영복 선생님의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고, 선생님은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게 세상을 보는 눈을 책으로나마 틔워 주셨다.

그 시절 이후로, 선생님은 늘 내 마음 속 가장 큰 은사님이셨다.

08년,

북악산 정상에서 우이 신영복 선생님을 뵈었다.
"아이고, 처음오셨다니 악수라도 해야지..." 하시며 손을 내미셨던 선생님,

"그런데 어디서 오셨나..?" 커피를 건네시며 물으셨던 선생님,
"광주에서 왔습니다."
"허~ 경기도?"
"전라도요 ^^;;"
"아이고~ 허허, 먼 걸음 했네~" 하고 웃으시던 선생님.

책으로 뵌 지 10년이 지나, 직접 얼굴을 맞대고 뵌 선생님 앞에서
지금까지 나무로 지내왔던 10년을 되돌아보고, '더불어숲' 분들과 함께 숲을 이뤄나가며 새로운 10년을 맞겠노라 다짐을 했다.

까까머리 그 시절 선생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느낌 그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2008년 1월, 또 힘차게 살아갈 10년의 시작점이다.




Posted by 배추돌이

2008/01/28 09:33 2008/01/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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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운동권→FTA 전문가→‘국제원조 전도사’

남영숙 외교부 심의관, 이화여대 교수로 변신
‘386 운동권’ 여대생 출신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통상전문가로 변신했던 남영숙(46·사진) 외교통상부 심의관이 20여 년 만에 대학 캠퍼스로 돌아간다. 남 심의관은 2일 외교부에 사의를 표시했다. 이화여대가 그를 국제대학원 교수에 채용키로 지난달 말 확정해서다. 그는 봄학기부터 국제통상 및 정부개발원조(ODA) 담당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남 심의관은 3일 “계약직 공무원 임기가 끝나는 2월 중순까지 한·미 FTA에 이어 한·EU FTA를 마무리한 뒤 젊은 냄새가 풋풋하게 나는 대학 캠퍼스로 돌아가게 돼 벌써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서는 눈 앞에 닥친 한·중 FTA 등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라 그에게 ‘승진’을 제시하며 퇴직을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캠퍼스로 돌아가겠다는 꿈이 이뤄졌고,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FTA의 단추를 끼우는 등 여한 없이 일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중략) 원문보기

중앙일보 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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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4 09:01 2008/01/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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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곧 우리의 삶입니다.



실천이 곧 우리의 삶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인터뷰

인물과 사상 2007년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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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뵌 적 없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부터 시작해 여러 책들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신
신영복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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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15:27 2007/11/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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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의 힘’… 사진 한점 1억9000만원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11-15 05:16 | 최종수정 2007-11-15 07:33


[중앙일보 남정호] 국내 사진작품 사상 최고가에 팔린 ‘온 에어 프로젝트: 뉴욕 타임스 스퀘어’(203.256.).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사진작가 김아타(51·사진)씨의 작품 14점이 미국 뉴욕에서 3일 만에 147만 달러(약 13억4000만원)에 팔렸다. 이달 8일부터 12일까지 맨해튼 피어92에서 열린 ‘제1회 뉴욕 아시안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 (ACAF NY)’에서다.

판매 작품 중 ‘온 에어(On Air) 프로젝트:뉴욕 타임스 스퀘어’는 21만 달러(약 1억9000만원)에 매각돼 국내 사진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는 올해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배병우씨 작품 ‘소나무’가 13만2000 달러(1억2000만원)에 거래됐던 게 기록이었다. 최고가를 경신한 김씨의 작품은 타임스 스퀘어를 8시간 이상의 노출 작업으로 찍은 것이다. 이 기법을 사용하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 등이 모두 사라진다. 시간 앞에서는 부질없는 존재의 본질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씨는 아트 페어 첫날부터 기대 이상으로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3일 만에 판매를 중단시켰다. 구매자들은 대부분 뉴욕 현지의 미술품 딜러들이었다. 김씨는 “미술시장의 이상 과열로 갑작스럽게 많이 팔려나가는 것도 작가와 작품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판매를 중단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이미 발표한 ‘온 에어’·‘뮤지엄’ 시리즈 외에 최근 찍은 중국 시리즈 3점을 선보였다.

 그는 이번 출품 작품을 통해 중국의 거대한 스케일과 문화적 깊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ACAF 출품 차 뉴욕에 온 그는 “머잖아 인도 현지에서 새로운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2002년 세계적 권위의 사진전문잡지인 영국 ‘파이돈프레스’ 선정 세계 100대 사진작가에 뽑혔던 김씨는 그 이후 뉴욕타임스 등 해외 주류 언론의 격찬을 받았다. 그는 동양 철학에 바탕을 둔 정적이고 미니멀리즘적인 작품으로 비평가 및 콜렉터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그의 작품을 구입, 소장 컬렉션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는 올 8월 동강 사진상을 수상하면서 상금 1000만원을 아프리카 구호단체에 전달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자신의 작품 12점을 동강사진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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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뉴욕 타임스퀘어에 가면 이 사진이 떠오르겠지.
그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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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5 10:41 2007/11/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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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엔 이제 마르크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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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마르크스 강의’ 김수행 경제학부 교수 퇴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  한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사회주의의 바이블(성경)’을 1989년 국내 처음으로 전권을 번역·출간했던 김수행(65) 서울대 교수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오는 22일 정년퇴임식을 갖고 강단에서 물러난다.

그는 좌파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대표적 좌파 이론가였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33명 교수 중 유일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해왔다.

(...이하 후략)

기사전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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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수북한 낙엽들을 밟으며 8동 강의실로 뛰어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경제학부 수업을 처음 들었던 것은 2001년 가을학기, 학교에 들어와서 네 번째 학기를 맞는 때였다. 일반적으로 학부에서의 경제학 코스는 경제원론과 경제수학을 거쳐 미시, 거시경제학을 듣는 것이지만 학생회 활동을 조금이라도 했던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이하 마경)이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당시 주로 활동하던 학번들이 고민하던 신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폐혜라는 부분에 대해 수업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마경 수업 (그리고 봄학기의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고, 또하나의 실질적인 이유는 과, 단대, 총학 선거로 인해 눈코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인 가을에 마경 수업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수업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과목이었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마경을 2학년 2학기에 들었고, 운좋게도 A+ 학점을 맞았다. 아마도 이리저리 선거운동에 참여하라는 선배들을 피해다녔던 나에 비해 선거준비 때문에 무더기로 결석하거나 수업준비를 등한히 했던 동기들 및 선배들의 시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쭐해졌던 나는 3학년 때 이후 본격적으로 경제학 수업을 듣기 시작했으나, 기본기 부족과 이해력 부족으로 인해 정말 간신히 복수전공 기준을 맞춰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 경제학부 복수전공을 하면서 A+를 받았던 것은 양동휴 교수님의 국제경제사 수업 뿐, 거의 A학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경을 들을 때 좀 덜 우쭐했더라면 미시와 거시를 재수강하는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르고, 평점평균을 좀 덜 깎아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6년이 지난 이제는 그때 수업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대부분 잊어버렸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 수업이 다른 수업과 겹치지 않는 토요일 오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대부분의 전공수업이 쉬는 계절학기에도 수업을 하셨다는 것도 기억이 난다. 그만큼 조금 더 많은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셨던 것 같다.

언제나 소수는 소중하고 중요하다. 소수가 있기 때문에 다수도 존재할 수 있고, 비판적 입장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이루며 자정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김수행 교수님이 정년퇴임하시게 되면서 가장 안타까워하시는 부분도 경제학부 내에서의 불균형 부분인 것 같다. 이미 졸업을 했고, 요즘같은 가을날 교수님 수업을 들으러다녔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더이상 후배들이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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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13:53 2007/11/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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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는 것 ...
한 분야에서 도가 튼 사람이면, 다른 분야에서도 잘 해낼 가능성이 높다.
분야는 다르지만,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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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8일 (화) 14:12   위클리조선

[인터뷰] ‘김&장’ 떠나 서울대 교수로 명함 바꾸는 신희택 변호사



신희택 변호사. (photo 전기명 조선일보 기자)

신희택 변호사는

신희택(申熙澤·55)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법연수원 수석 수료의 ‘수석 2관왕’ 출신이다. 사법시험 16회, 연수원 7기. 1980년 김&장에 합류한 뒤 예일대에서 국제통상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통상과 국제투자거래 분야에서 국내 법조계를 대표하는 국제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대표적 스타 변호사인 그가 김&장을 떠나 서울대 법대 교수로 간다는 소식은 법조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현 김영무 김&장 대표 변호사의 후임으로도 거론되는 신 변호사는 최근 조선일보가 20대 로펌 대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시대 최고 변호사’로 뽑히기도 했다. 1998년 스웨덴 볼보그룹이 삼성중공업 중장비 부문을 인수할 때 법률자문을 주도하는 등 대형 M&A에 많이 참여했다.

요즘 법조계에서는 그의 행보(行步)가 화제다. 몇십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모교 강단에 서는 길을 택했다. 많은 동료 법조인이 “신선한 충격”이라 했고, 후배들은 “멋진 선택”이라고 했다. 30년 전에도 사법연수원을 수석 수료한 그는 많은 사람의 예측과 달리 판·검사의 길을 택하지 않고, 변호사가 10명도 되지 않는 로펌으로 갔다. 강효상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지난 9월 1일 저녁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 30층 라운지에서 국내 최대 로펌 김&장을 떠나 서울대 법대로 옮기는 신희택 변호사를 만났다. 파란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셔츠를 입고 노란 넥타이를 맨 그는 벌써 변호사보다는 교수에 가까운 인상을 줬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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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19:10 2007/09/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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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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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 2007년 2월 8일

[기자 24시]

7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1층 무궁화홀.

오후 3시께부터 이곳을 지나가던 호텔 고객들은 회의장에서 터져나오는 함성소리에 어리둥절해야 했다.

함성소리 주인공은 올해 SK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사원 700여 명.

SK에서 이날 마련한 프로그램은 `회장과 대화`. 최 회장이 SK그룹에 대한 본인 생각을 밝히고 새내기들에게 궁금증을 직접 듣고 대답하는 자리다.

최 회장 양옆으로는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등 18개 계열사 대표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새내기들은 각 계열사 사장들이 소개될 때마다 환호와 함성을 연방 질러댔다.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라 그런지, 서영길 TU미디어 대표와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연애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글로벌회사`를 강조하는 요즘 SK 분위기를 반영하듯 행사는 `최 회장과 대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눈에 띠었던 대목은 새내기들의 자유로운 질문세례였다.

"회장님, 저도 풍채가 좋은데 팔씨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

"회장을 한방에 넘기려고? 여러분끼리 경연해서 대표를 데려오세요."(최 회장)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에게 리더를 넘겨준 리더가 되고 싶네요."(최 회장)

이날 질문과 대답에서 미리 짜여진 각본은 없었다.

최 회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도 이어졌다.

한 신입사원은 SK글로벌 분식회계를 지적하면서 "SKMS(SK 강령)에 `정직성`이 강조되지 않았다.

또 분식회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일순 회의장 분위기는 굳어졌다.

최 회장도 잠시 얼굴이 상기됐지만 이내 생존위기에서 비롯된 측면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어떤 새내기들이 되길 원하십니까?"

마지막 질문에 최 회장은 "곁에 있는 동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꾼이 되세요"라며 `행복나눔론`으로 말을 맺었다.

발랄하고, 어찌보면 당돌하기도 한 SK 새내기들에게 건투를 빈다.

[산업부 = 김웅철 기자 uckim@mk.co.kr]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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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회장과의 대화 시간과 연날리기 시간을 통해 한 주에 두 번이나 멀리서나마 뵙게 되었는데,
역시 범상한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회장과의 대화 시간에 보여준 능숙한 언변과 화술 속에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흔적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여러분이 받은 행복을 누구에게 나눠주시겠습니까?"

"..."

"잘 모르겠다면 집에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부터 먼저 나눠주세요."


기업 총수답지 않은 폐회사였기에, 기억에 꽤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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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9 09:48 2007/02/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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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교수를 만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오늘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던 남산 그린빌딩에 갔을 때에도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연수 진행을 맡은 매니저들은 오늘 오전의 '프로의식'  강의시간에 졸면 그야말로 '갈아마시겠다'고 거듭거듭 경청할 것을 강조했던 터라 중요한 인물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 사람일 줄은...

강의 시간이 되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왔던 사람은 '100분토론'과 '시선집중'으로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였다. 오죽했으면 교수님이 '마치 스쿨 어택을 연출한 것 같다'라고 말했을까. 그만큼 우리는 놀라움에 잠긴 채 그를 맞았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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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찍은 사진이 아직 릴리즈가 안된 관계로... 일단)


우리 아버지보다 한 살이 어린 56년생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난 그는 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우리 SKT 신입사원들에게 두 시간에 걸쳐 프로의식에서부터 시작해서 언론과 사회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명쾌한 논리와 위트있는 언어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가 우리들에게 요청했던 것은 사회 생활에 있어서 팀워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 자기자신이 모두 소진되기 이전 적정한 타이밍에 자기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 그리고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섬으로써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관계에서 오해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손석희 교수는 자신이 그동안 방송사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이용해 들려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의 진정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마이다스와 같은 능력을 발휘했다. 20여 년을 다른 사람과의 소통하는 직업에 있으면서 쌓아왔던 그의 이러한 능력이야말로 강의의 주제였던 '프로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던 강의였다.

손석희 교수에게는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방송이 혹은 언론이 강자보다는 약자를, 다수보다는 소수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성위주의 사회이니만큼 마초보다는 페미니스트의 목소리에, 자본주의 사회이니만큼 자본보다는 노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그의 음성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한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리더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Communication'이요 '소통'임을... 그리고 내가 그 과정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하루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Posted by 배추돌이

2007/02/08 22:08 2007/02/0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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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만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 김연수 소설 "밤은 노래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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